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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우리는 어떻게 위치를 파악할까?

by 나서라 2025. 3. 14.

사람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길을 찾으며, 새로운 장소를 기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공간 인지(spatial cognition) 능력은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이며, 이는 특정한 신경 회로망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방향을 찾고 공간을 인식하는데, 과연 이러한 과정이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이번 글에서는 사람이 위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속 공간 인지 시스템을 살펴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신경 메커니즘을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어떻게 위치를 파악할까?

공간 인지를 담당하는 뇌 구조

공간 인지는 여러 뇌 영역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해마(hippocampus)와 내후각 피질(entorhinal cortex)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해마는 기억 형성과 공간 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구조로, 특히 위치 세포(place cells)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공간적 기억과 방향 감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위치 세포는 특정한 장소에 도달했을 때 활성화되는 뉴런인데, 특정 공간에서의 경험을 저장하고 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집에서 직장까지 가는 길을 반복해서 걷게 되면 해마 속 위치 세포들이 그 경로를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동일한 경로를 가게 될 때 해당 위치 세포들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방향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치 세포의 존재는 1971년 존 오키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는 이 연구로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내후각 피질에는 격자 세포(grid cells)라는 것도 존재한다. 격자 세포는 우리가 이동할 때 주기적으로 활성화되며, 공간을 좌표처럼 조직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활성화되는 패턴을 통해 뇌가 공간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격자 세포는 마치 육각형 격자 모양의 지도처럼 작동하며, 이 정보를 기반으로 위치 세포가 보다 정교한 공간 인식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우리가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도 방향을 찾거나, 넓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공간 인지의 작동 원리

공간 인지는 개별적인 뉴런이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경 회로망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주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시각 정보 수집으로 눈을 통해 주변 환경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후두엽의 시각 피질에서 이를 처리한다. 다음으로 내후각 피질에서 좌표를 형성하는데, 격자 세포가 공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좌표를 형성한다. 그 다음에는 해마에서 위치 정보를 저장하는 단계로 위치 세포가 특정 공간의 경험을 학습하고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전두엽과 연계하여 학습된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러한 과정 덕분에 우리는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목적지까지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공간 기억과 길 찾기

공간 기억은 단기적인 방향 감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기억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 살던 동네를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도 익숙한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해마의 공간 기억 덕분이다. 또한, 공간 기억은 길 찾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사람들이 길을 찾는 두 가지 방식을 살펴보자. 첫번째 방법은 표지 기반 탐색이다. 즉, 특정 건물, 신호등, 상점 등의 시각적 단서를 활용해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두번째 방법은 지도 기반 탐색으로 머릿속에서 전체적인 지도를 구성하고 상대적 위치를 고려하여 길을 찾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전략은 해마와 내후각 피질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사람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공간 인지 시스템의 손상과 문제

이러한 공간 인지 시스템이 손상되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거나, 새로운 공간을 학습하는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초기 단계에서 길을 잃거나 익숙한 장소에서 방향을 찾기 어려워하는 증상을 보인다. 이는 해마와 내후각 피질이 점진적으로 퇴행하면서 공간 기억을 저장하는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공간 인지 기능의 저하는 신경과학 및 임상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최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는 가상 현실(VR) 기술을 활용한 연구에서는 공간 기억이 손상된 환자들에게 가상의 환경을 제공하여 길 찾기 능력을 평가하고, 이를 치료적 개입에 활용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환자의 경우 공간 인지 방식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공간 인지 시스템이 단순한 길 찾기 기능을 넘어, 인지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간 인지를 향상시키는 방법

공간 인지 능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이 된다면 이러한 방법들을 시도해볼 수 있다. 먼저 새로운 환경을 탐색해보는 것인데,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방문하고 직접 탐색하는 경험이 공간 기억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지도를 그리는 연습이 있는데 머릿속에서 특정 장소의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공간적 사고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운동 및 신체 활동도 도움이 되는데 걷기나 등산과 같은 활동은 공간 인지 시스템을 자극하고 건강한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퍼즐 및 두뇌 게임으로 공간적 사고를 요구하는 퍼즐이나 전략 게임은 해마와 내후각 피질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공간 인지와 뇌과학

 

마치며

공간 인지는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신경 기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다. 해마와 내후각 피질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인지 시스템은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찾으며, 공간적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앞으로 공간 인지 연구는 신경 퇴행성 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및 로봇 공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