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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통증, 뇌에서 어떻게 만들어질까?

by 나서라 2025. 2. 13.

통증은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각이지만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신경계 전반에서 조절되는 복잡한 현상이다. 우리는 왜 어떤 통증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같은 강도의 통증을 덜 느낄까? 그리고 만성 통증은 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통증이 단순히 통각수용기의 자극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그 경험이 달라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통증이 어떻게 감지되고 조절되는지, 그리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어떤 기전이 작용하는지를 살펴보자.

 

통증, 뇌에서 어떻게 만들어질까?

통증의 시작, 말초 신경에서 뇌까지

통증은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발생하는 자극이 말초 신경계를 통해 뇌로 전달되면서 형성된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통각수용기(Nociceptors)의 활성화

우리 몸에는 통각수용기라는 특수한 감각 뉴런이 존재한다. 이들은 피부, 근육, 관절 등에 퍼져 있으며, 물리적 손상(베임, 타박), 화학적 변화(염증, 독소), 열적 자극(화상, 동상) 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손가락을 칼에 베었을 때 즉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이 통각수용기들이 활성화되면서 신경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척수를 통한 신호 전달

통각수용기가 활성화되면 신호는 말초 신경을 따라 척수로 전달된다. 특히, 척수의 후각(dorsal horn)은 이 신호를 중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어 신호가 더 증폭되거나 억제될 수 있다. 게이트 컨트롤 이론(Gate Control Theory)에 따르면, 척수에서 특정 신경 회로가 작용하여 통증 신호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손을 다쳤을 때 본능적으로 문지르는 행동은 비통각성 신경을 활성화하여 통증 신호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뇌에서의 통증 해석

통증 신호는 척수를 지나 시상(thalamus)으로 전달되며, 이후 대뇌 피질과 변연계를 포함한 다양한 뇌 영역에서 처리된다. 이 과정에서 통증의 위치, 강도, 성격뿐만 아니라 감정적 반응도 결정된다. 먼저 체감각 피질(Somatosensory Cortex)은 통증의 위치와 강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변연계(Limbic System)는 통증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조절한다. 같은 강도의 통증이라도 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른 것은 이 변연계의 작용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통증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에 대한 인지적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가 경기 중 다쳐도 통증을 덜 느끼는 것은 전전두엽이 그 순간 통증을 무시하도록 조절하기 때문이다.

 

왜 만성 통증이 발생하는 것일까?

만성 통증은 신체 손상이 사라진 후에도 지속되는 경우를 말하며, 이는 신경계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

반복적인 통증 경험은 척수와 뇌에서 신경 경로를 변화시켜 통증을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작은 자극에도 큰 통증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의 한 형태로 뇌가 통증을 학습하면서 더 쉽게 활성화되는 것이다.

신경 손상과 신경병성 통증

신경 자체가 손상되면 비정상적인 신호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나 당뇨병성 신경병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신경병성 통증은 기존의 진통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가 어렵다.

감정과 스트레스 영향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통증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소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은 신경계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며, 이는 통증의 강도를 증가시킨다. 또한, 불안과 우울이 심할수록 같은 통증도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뇌가 통증을 조절하는 방법

우리의 신경계는 통증을 완화하는 여러 가지 기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치료법도 연구되고 있다.

내인성 진통 시스템 (Endogenous Pain Modulation)

우리 몸은 자체적으로 통증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엔도르핀(Endorphins)과 엔케팔린(Enkephalins)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이들은 뇌의 특정 수용체에 작용하여 마약성 진통제와 유사한 효과를 내며 운동, 명상, 음악 감상 등을 통해 활성화될 수 있다.

신경 조절 치료

전기 자극 치료(TENS, 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는 피부 표면에 전기 자극을 가하여 통증 신호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뇌 심부 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 DBS)은 특정 뇌 영역에 전극을 삽입하여 신경 신호를 조절하는 치료법으로 극심한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

통증의 인지적 측면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환자가 통증을 다르게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실제 통증 강도를 낮출 수 있다.

 

 

마치며

통증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신경계 전반에서 조절되는 복합적인 경험이다. 같은 신체적 손상이라도 개인마다 통증을 다르게 경험하는 이유는 뇌의 여러 영역이 관여하여 통증의 강도와 의미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만성 통증은 신경 가소성으로 인해 지속될 수 있으며, 스트레스와 감정 상태도 통증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다행히도 뇌는 스스로 통증을 조절할 수 있는 기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치료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가 더 진행된다면 우리는 통증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