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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by 나서라 2025. 2. 6.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했다. 특히, 죽음을 경험할 뻔한 사람들이 보고한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NDE)’은 과학과 철학, 종교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강렬한 빛을 보거나, 과거의 기억이 빠르게 지나가는 경험을 하거나, 초월적인 존재와 마주했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경험이 실제로 사후 세계를 증명하는 것일까? 아니면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신경과학은 임사체험을 신비로운 초자연적 현상이라기보다는,극단적인 생리적 변화 속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인지적, 감각적 현상으로 바라본다. 이 글에서는 임사체험이 발생하는 과정과 신경과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죽음 직전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탐구해보자.

 

죽음을 경험하는 순간,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임사체험의 주요 특징

터널과 빛

임사체험자 중 상당수는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향해 가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이는 망막과 시각 피질이 산소 부족(hypoxia)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신경학적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 뇌가 산소 부족 상태에 빠지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occipital lobe)이 비정상적인 신경 신호를 발생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중심 시야에 강렬한 빛이 나타나고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는 ‘터널’과 같은 시각적 착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조종사나 등산가들이 고산지대에서 산소가 부족할 때 경험하는 시각적 변화와 유사하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

죽음 직전, 자신의 삶이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뇌의 측두엽(temporal lobe)과 해마(hippocampus)가 극도로 활성화되면서 기억이 급격히 재구성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는 뇌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억을 빠르게 불러오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감정과 관련된 뇌 영역이 강하게 반응하면서 단순한 기억 회상이 아닌 매우 생생하고 감동적인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

많은 임사체험자들은 신이나 고인의 영혼과 만났다고 보고한다. 이는 내측 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과 측두엽(temporal lobe)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측두엽은 환각과 관련이 깊은데, 일부 연구에서는 전기 자극을 통해 측두엽을 자극하면 환자들이 영적 존재를 느끼거나 유체이탈을 경험한다고 보고되었다. 따라서 신비로운 존재와의 만남 역시 뇌의 특정한 활성화 패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본 임사체험

죽음 직전의 뇌 활동에서 감마파의 폭발

최근 연구에서는 심장 정지가 발생한 직후 뇌에서 감마파(gamma wave) 활동이 급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마파는 고차원적 사고, 기억 회상, 의식적 경험과 관련이 있는 뇌파다. 2022년 한 연구에서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환자의 뇌 활동을 측정한 결과, 사망 직전 감마파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는 임사체험이 단순한 신경 붕괴가 아니라 죽음 직전 뇌에서 매우 조직적인 인지적 프로세스가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약물과 임사체험의 유사성

일부 환각제(예: DMT, LSD, 케타민)는 임사체험과 유사한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 먼저 일부 연구에서는 DMT(디메틸트립타민)가 임사체험에서 보고되는 환각과 감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로토닌 수용체(5-HT2A)를 활성화하여 강렬한 시각적 경험과 의식 변화 현상을 유도한다. 그리고 해리성 마취제로 사용되는 케타민 역시 유체이탈 및 신비로운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임사체험이 뇌의 신경전달물질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유체이탈 경험과 과학적 설명

임사체험 중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몸 밖으로 나가 주변을 내려다보는 경험을 한다. 이를 ‘유체이탈 경험(OBE: Out-of-Body Experience)’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경과학자들은 이 현상이 뇌의 공간 인식 시스템의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히 두정엽(parietal lobe)과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이상 활동이 유체이탈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두정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공간 감각을 잃거나 자신이 몸에서 분리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가상현실(VR) 실험에서도 특정 시각 정보를 조작하면 유체이탈 경험과 유사한 착각을 유발할 수 있다.

 

 

죽음 직전의 뇌는 생존 본능의 마지막 불꽃?

임사체험은 신비로운 경험처럼 보이지만, 신경과학적 연구들은 이를 뇌의 마지막 생존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밝은 빛과 터널 현상은 후두엽의 시각적 착각,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은 해마와 기억 회상의 과정, 초월적 존재와 감정 폭발은 측두엽의 활성화, 그리고 유체이탈 경험은 두정엽과 공간 인식의 오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임사체험이 뇌의 신경학적 과정에서 비롯된 현상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의식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향후 연구를 통해 우리는 죽음 직전 뇌에서 벌어지는 과정과 의식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